안녕하세요? 여러분 혹시 100원 동전 앞면의 충무공의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故) 장우성 화백이 그린 그림 입니다.오늘은 이 장우성 화가가 어떤 사람인지 프로필 그리고 기본정보와 작품세계에 대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장우성화가 프로필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 화백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현대
▶ 출생 : 1912년 6월 22일
▶ 경기 : 여주시
▶ 사망 : 2005년 2월 28일 (향년 92세)
▶ 데뷔 :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 대표작 : 화단풍상 70년, 화실수상
▶ 경력 : 서울대미술대 교수, 국전 심사위원
▶ 경력 : 197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고) 장우성 화백 정보 및 작품
장우성 화가 기본정보
“그림에는 혼(魂)이 배어 있어야 한다.
불타는 혼이 있어야 감동과 희열을 주는 작품을 창출할 수 있다.
격조와 품격은 많은 노력과 사색의 결과인 것이다.”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 화백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그는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거성(巨星)’ ‘한국화의 제1과제였던 전통의 현대적 변용을 화폭에 구현한 선구자’ ‘고고한 정신과 예술 감각과 그림 재능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인물’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의 제자로 지난해 타계한 이열모 화백은 월전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월전의 회화 철학은 회사후소(繪事後素)였다. 선비정신을 일깨운 말로, 그리기에 앞서 마음의 바탕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준 또 하나 가르침은 도가(道家)의 ‘무위(無爲) 사상’이었다. 그것은 인위적 문화를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 자유자재의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신선과 같은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세계라고 했다.”
장우성 화가 작품세계
개설 1912년 충북 충주(忠州)에서 출생하였고, 김은호의 제자로 채색 공 필 화법을 배우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한국 전통 수묵화의 발전을 도모하며 수묵의 사의성이 강조된 신문인화 운동을 이끌어 현대적이며 한국적인 수묵화를 창조하였다.
1930년에는 이당 김은호(金殷鎬)의 화숙(畵塾)인 낙청헌에서 동양화 실기를 습득하는 한편, 육교 한어학원에서 한자를, 김돈희(金敦熙) 서숙인 상서회에서 서예를 익혔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 배렴, 이응노, 김영기, 이유태, 김중현 등과 더불어 동양화의 쇄신을 목적으로 단구 미술원을 조직하였다.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49년 국전이 창설되자 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되었으며 1981년까지 국전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1951년 종군화가로 중부전선에 종군하였으며 1953년에는 이충무공 기념사업회의 위촉으로 제작한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1년까지 김유신, 권율, 정약용, 강감찬, 윤봉길, 정몽주 등의 영정을 제작하였다.
1974년에는 세종대왕 기념관에 「집현전학사도」를 제작하고, 1975년에는 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상훈과 추모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으로는 「해빈소견(海濱所見)」(제11회, 1932, 입선), 「신장」(제13회, 1934년, 입선), 「요락(搖洛)」(제15회, 1936년, 입선), 「승무」(제16회, 1937년, 입선), 「연춘(軟春)」(제17회, 1938년, 입선), 「모습(姿)」(제19회, 1940년, 입선), 「푸른 전복」(제20회, 1941년, 특선), 「청춘일기」(제21회, 1942년, 특선. 창덕궁상 수상), 「화실」(제22회, 1943년, 특선), 「기도(祝壽)」(제23회, 1944년, 특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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